[원더풀 라이프] 부산밥퍼나눔공동체 손규호 본부장
2018-01-18 / 부산일보 윤현주 선임기자
'나눔의 밥' 14년 한길… 따뜻한 사회안전망 만들어가요
'부산밥퍼나눔공동체' 손규호(맨 오른쪽) 본부장이 지난주 부산진역 무료급식소에서 급식 봉사를 하고 있다. 김경현 기자 view@
한국인은 밥심으로 산다는 말이 있다. 이 작은 나라가 세계 10대 경제대국이 되고, 문화·스포츠 등 각 분야에서 놀랄 만한 성과를 거둔 데는 어쩌면 '밥의 힘'이 작용한 덕분인지 모른다. 아무리 맛있는 음식을 먹었을지라도 마지막엔 밥 한술을 떠야 식사가 완결되는 식습관은 한국인의 피 속에 밥의 유전자가 면면히 흐르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밥을 굶는다는 것은 힘을 쓰지 못한다는 것, 나아가 사람 구실을 제대로 하지 못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밥을 굶는 사람들에게 무료로 밥을 제공하는 것은 그들에게 힘을 쓰게 하는 것, 나아가 사람 구실을 하도록 하는 지고지순한 행위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부산진역·부산시청 녹음광장서 노숙인·결식노인 무료급식 제공 '밥값' 하는 삶 살아가도록 독려
올해부터 급식 일선서 물러나 노숙인 자활·자립 매진할 계획 마을 단위 급식시스템 완비 '꿈'
■밥이 바로 생명이다
노숙인과 결식노인들에게 14년 동안 꾸준하게 무료급식을 해 온 사람이 있다. 밥은 곧 생명이요 은총이라고 생각하는 사람. 사단법인 부산밥퍼나눔공동체 손규호(61) 상임이사 겸 본부장이 그 사람이다. 손 본부장이 이끄는 부산밥퍼나눔공동체(이하 부산밥퍼)는 현재 부산진역과 부산시청 녹음광장에서 매주 목·금요일 점심과 저녁에 무료식사를 제공하고 있다. 무료식사 수혜 대상자의 숫자가 만만찮다. 부산진역에는 매일 300~400명, 녹음광장엔 700~800명에 달한다. 조리와 운반, 배식, 설거지, 정리정돈 등 모든 활동은 부산밥퍼와 자원봉사자들의 몫이다.
이 모든 과정을 진두지휘하며 시스템을 정착시킨 게 손 본부장이다. 그는 부산의 무료급식 운동을 대변하는 사람이다.
손 본부장이 부산밥퍼와 인연을 맺은 것은 2004년 8월. 노무현 정부 초대 해양수산부장관을 지낸 최낙정 씨가 "1년만 도와 달라"고 해서 밥퍼 창설 멤버가 됐다. 그러나 최 씨는 가족의 반대로 발을 뺐다. 이 바람에 손 본부장은 얼떨결에 부산밥퍼를 떠안아야 했다.
"운명이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기독교 모태 신앙자인데, 일종의 소명의식을 느꼈어요. 할 때까지 해보자고 생각하고 앞만 보고 왔는데, 여기까지 오고 말았습니다. 허허."
손 본부장은 그 전에 부산참여자치시민연대에서 상임이사를 맡는 등 진작에 시민운동에 몸담은 경력이 있었다. 부산밥퍼와 인연은 그 연장선에 있다. 그가 시민운동에 관심을 두게 된 것은 유년기 경험이 마음속에 내재해 있기 때문이었다. "어릴 적 초읍에서 살았는데, 집 옆에 보육원이 있었어요. 자연스럽게 보육원 아이들과 친구가 됐고, 그들의 실상을 알게 되면서 사회문제에 눈을 돌리게 된 것 같아요."
2016년 '부산밥퍼'의 더불어합창단 창단 공연 모습. 이 합창단은 노숙인·장애인·독거노인과 자원봉사자들의 혼합 합창단이다. 부산밥퍼 제공
■부산밥퍼 사단법인으로 탄력
부산역에서 시작한 부산밥퍼의 급식 무대는 2년 만에 부산진역으로 옮겼다. 2005년 부산 APEC(아시아·태평양경제공동체)을 앞두고 부산시가 부산역 정화를 위해 이전을 종용한 것. 이때 실내 급식소가 마련됐다. 임의단체 부산밥퍼는 2010년 사단법인으로 탈바꿈하면서 사업에 더욱 탄력을 받게 된다.
손 본부장은 단순한 무료급식 차원을 넘어 노숙인들의 자활·자립으로 활동 영역을 넓혔다. 강서구에 공장 건물을 임대해 자활공동체를 만들었다. 텃밭 6000여㎡도 마련했다. 여기서 노숙인들과 함께 생활하며 농사를 짓고 자활을 위한 다양한 프로그램도 운영하고 있다.
"노숙인들 혼자서는 절대로 자활·자립할 수가 없어요. 공동생활을 통해 습관과 생각을 바꾸고 과거와 단절해 희망의 끈을 이어가야 합니다."
현재 자활공동체에서 생활하는 노숙인은 7~8명. 30여 명이 이곳을 거쳐 사회로 나갔다. 그중에는 자립에 성공한 사람도 있고 다시 노숙인으로 전락하는 경우도 있었다.
돈도 명예도 없는 밥퍼운동에 매진할 수 있었던 원동력은 뭘까? 그는 가슴 아픈 집안 얘기를 털어놓았다. "저희 부부에겐 자식이 없어요. 아내가 젊어서 큰 수술을 몇 번 받다 보니 그렇게 됐습니다. 그러니 자식에게 신경 쓸 일도, 집에 돈 들어갈 일도 별로 없잖아요. 그래서 이 일에 매진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아내도 많이 이해해 주는 편이고요."
손 본부장의 부인도 사회복지사로 복지관 업무에 종사하고 있으니, 부부는 아이 대신 봉사를 통해 삶의 보람을 찾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그에게 밥은 어떤 의미일까?
손 본부장은 급식 전 노숙인이나 노인들과 간단한 대화의 시간을 가지고 밥의 의미를 되새김한다. 일종의 정신교육이다. 기자가 부산진역 급식소를 찾아간 날도 그는 마이크를 잡았다.
"조물주는 왜 사람들이 매일 밥을 먹지 않으면 안 되게 만들었을까? 궁금하지 않습니까? 밥이 여러분들의 입에 들어오기까지 과정을 한 번 생각해봅시다. 쌀이 만들어지기까지 농부들의 노고가 있었고요. 많은 사람의 노동과 성금과 봉사를 통해 이곳까지 밥이 배달됐습니다. 오늘 메뉴인 어묵만 해도 얼마나 많은 사람의 노고와 사랑이 담겨 있습니까? 밥으로 배만 채운다고 생각한다면, 짐승과 다를 게 뭐가 있겠어요. 밥의 감사함을 알고 각자 '밥값'을 해야 합니다."
밥값은 돈을 내라는 얘기가 아니다. 밥을 감사하게 먹은 후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는 삶을 살라는 뜻이다. 거창한 일보다도 좋은 말을 하고 주변 청소를 하는 일부터 시작하면 된다고 손 본부장은 강조했다.
■100% 후원으로 운영
손 본부장은 부산밥퍼의 운영 방식에 대해 자부심을 느끼고 있다. "저희는 100% 후원금으로 운영자금을 충당합니다. 더욱이 이 자금을 고스란히 목적 사업비로 지출합니다. 재산 축적을 위해선 한 푼도 쓰지 않지요. 중간 통로 역할만 충실할 따름입니다."
그는 올해부터 급식 일선에서 물러날 생각이다. 이미 본부장을 맡을 적임자를 뽑아놨다.
"제가 없어도 급식 일은 잘 돌아갈 만큼 안정돼 있다고 생각합니다. 대신 저는 제가 아니면 하기 어려운 노숙인 자활·자립 문제에 천착할 생각입니다."
그는 현재 운영하는 자활공동체를 활성화해 전국적인 자활·자립의 롤모델로 만드는 게 꿈이다. 이미 다섯 군데의 '밥퍼 사랑방' 시범 운영을 통해 어느 정도 노하우도 쌓았다.
더욱 궁극적으로는 마을 단위 지역 밀착형 무료급식 시스템을 완비하는 날을 꿈꾼다. "동네마다 급식소가 생겨나고 운영, 후원, 봉사 등 모든 과정이 한 마을에서 이뤄진다면 가장 바람직한 사회안전망이 갖춰지는 것 아니겠어요. 지금처럼 수백 명이 한꺼번에 식사하는 방식은 바람직한 현상은 아니라고 봐요. 경로당을 활용할 수 있도록 부산시와 구·군이 힘을 써 줬으면 좋겠습니다."
손 본부장은 마지막으로 꼬깃꼬깃 접어둔 자신의 노후 계획을 꺼내 놓았다. "아내와 심심산골로 들어가서 조용히 여생을 보낼 계획입니다. 지금부터 조금씩 준비하면 되겠죠." 그의 소망이 꼭 이뤄지기를 기원해 본다.
윤현주 선임기자 hohoy@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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