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밥퍼나눔공동체

 
작성일 : 15-12-04 04:08
"나는 왜 길에서 잠 잤나" 노숙인 5명 책 냈다
 글쓴이 : 최고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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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은 괴로운 것이다. 아침에 일어나면 속이 아프고 지나온 삶이 후회된다. 하지만 지금 여기는 좋다."

부산역 등지에서 10년째 노숙인 생활을 해 온 김강출(65)씨는 언덕에서 태어났다고 언덕 강(崗)에 날 출(出)자를 써 이렇게 불렸다. 할아버지가 지어주신 이름이지만 내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아버지가 장 공장을 운영했는데 5·16군사 쿠데타로 집이 몰수당했다. 어릴적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이다.

대학생 자원봉사자 녹취·정리 도와줘

사업 실패·자살 시도 등 인생 역경 담아

8일 출판기념회 열고 자립·자활 다짐

원양어선을 타고 보내던 젊은 시절, 하는 일마다 실패한 뒤 자살 기도, 10년 전부터 시작된 노숙생활, 그리고 죽기 전 마지막 소원 세가지, '뇌경색으로 마비된 몸 건강 되찾기', '술, 담배 안 하기', 끝으로 '직장이 있었으면…'.

노숙인들이 자신의 삶의 역정을 한 권의 책으로 펴내 눈길을 끌고 있다.

'길 모퉁이에 비켜선 사람들'이란 제목의 이 책은 부산지역 노숙인 5명이 자신의 어린시절과 청소년, 중·장년시절, 노숙인이 된 이유 등 개개인이 살아온 인생 역정을 담고 있다.

노숙인들의 자서전 쓰기는 부산시자원봉사센터 소속 부산대, 동아대, 부경대 등 부산지역 10여개 대학 대학생들이 아니었으면 엄두도 내지 못할 일이었다. 노숙인들은 지난해 8월 센터 내 대학생 자원봉사 프로그램 중 하나인 '노숙인 자서전 쓰기'를 접할 때만 해도 탐탁지 않았다. "노숙인 주제에 자서전은 무슨…." 노숙인 대부분이 부정적이었다.

하지만 김씨는 죽기전 자신의 삶을 한번쯤 되돌아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고 생각했다. 김씨와 생각을 함께 한 4명의 노숙인이 동참했다. 김씨는 "다른 노숙인이 함께하면서 용기가 났고 잘난 것도 없지만 삶을 한 번 정리해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자서전은 노숙인들이 과거를 회상하면 대학생들이 녹취, 정리해 주는 식으로 진행됐다. 노숙인 1명당 대학생 3~4명이 도왔다. 대학생들은 노숙인들이 생각의 실마리를 풀 수 있게 "어렸을 때 주로 어디서 놀았나"는 등의 질문을 던졌다. 노숙인들의 자서전 쓰기는 3개월간 계속됐다. 부산외대 이진희(23·여)씨는 "노숙인들의 자서전 쓰기를 도와주면서 인생에 대해 보다 진지하게 생각할 수 있는 계기가 돼 오히려 내가 많은 도움을 받았다"고 말했다.

8일 부산 연제구의 한 식당에서 노숙인과 자원봉사자 등 1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길 모퉁이에 비켜선 사람들'의 출판기념회가 있었다. 이날 행사는 노숙인들과 결식 노인을 위해 식사를 제공하고 이번 자서전 출간을 도운 부산밥퍼나눔운동본부가 주관했다.

부산밥퍼나눔운동본부 손규호 본부장은 "노숙인 자서전 쓰기는 노숙인들이 자신의 삶을 돌아보고 정리하다 보면 자립과 자활의 희망을 스스로 가질 수 있을 것이란 생각에서 마련됐다"면서 "앞으로 연간 두 차례 이를 정례화해 보다 많은 노숙인들이 자립과 자활을 할 수 있도록 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김진성 기자 paperk@busan.com